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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해(權文海) : (1534 – 1591) 따뜻한 인간애, 열린 학풍, 우리 땅에 자부심을 가진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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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회 작성일 25-01-0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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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해(權文海) : (1534 – 1591) 따뜻한 인간애, 열린 학풍, 우리 땅에 자부심을 가진 학자. 


  

호는 초간草澗이다.


권문해가 태어난 권씨 종택은 금당실 서북쪽 대수마을이다. 대는 대나무에서 따온 말이고 수藪는 덤불, 숲이란 뜻이다. 곧 대숲이다. 대수마을은 예천 권씨가 15세기부터 터를 잡고 이어온 집성촌이다.


예천 권씨 종택은 초간 권문해 조부인 권오상權五常이 임진왜란 전(1589)에 지었다. 예천에는 향리집단인 임씨, 윤씨, 권씨(흔씨) 토성이 있었다.


초간 권문해는 내외직을 고루 경험했다.


내직인 성균관과 춘추관에서 학문의 폭을 넓혔고 탄핵을 주요한 일로 삼는 사간원, 사헌부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쳤다. 곧고 바른 도로서 관직의 높낮이를 따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불의를 보이면 진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초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때 사대부들이 우리나라 역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통감』 이나 『사략』 같은 중국 역사를 중시했는데, 이를 강력히 비판했던 점이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으면 갖추기 힘든 일이다. 이런 생각이 열매 맺은 것이 바로 대동운부군옥이다.


이 책은 단군시대부터 158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 지리, 나라 이름, 성씨, 인물, 효자, 열녀, 수령, 산 이름, 강 이름, 꽃 이름, 짐승 이름 등 11개 항목으로 운별로 나누어 놓은 하나의 백과사전으로 볼 수 있다, 모두 20권 20책이다.


초간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병폐를 들어내어 세상에 필요한 학문을 따랐으며, 사람의 도리를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우리 역사책을 짓고 역사를 가르치는 것으로 세상을 바로 세우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