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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덕(張胤德) : (1872 – 1907) 구국항일운동가. 횃불 켜들어 겨레 깨운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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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25-01-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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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덕(張胤德) : (1872 – 1907) 구국항일운동가. 횃불 켜들어 겨레 깨운 의병장 


 

1872년 7월 6일 예천군 예천읍 노상리에서 단양인 장제안張載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성암惺菴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다. 아버지가 30리 떨어진 보문사에서 3년 동안 공부하고 있을 때 날마다 강을 건너가 문안을 드렸으며, 여름 장마로 물이 불어 강을 건너지 못했을 때는 강뚝에 올라가서 아버지를 향해 절을 올렸다.


일찍이 한학을 닦아 문장이 예천 고을에 널리 퍼졌고 20세가 넘어서는 예천군 수서기로 일했다. 1905년 일본이 을사강제조약으로 나라 주권을 빼앗자 책상을 치며 울부짖다가 수서기를 그만두고 “누구든 친일반역행위를 하는 자는 가차 없이 처단하겠다.”며 구국항일 운동에 나선다. 이때부터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한데서 먹고 잠자고 싸우는 모진 세월이 시작된다.


1907년 9월 12일 예천을 습격하여 일본인 집과 우편소를 파괴한다. 이어서 대구수비대를 격파할 목적으로 상주읍을 친다. 그러나 대구수비대 습격 정보를 입수한 다나카 대위가 1개 중대 병력을 거느리고 의병들이 이동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마침내 장윤덕 의병대와 일전을 벌였다.


이날 늦은 밤까지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참패한 장윤덕 의병장은, 남은 의병을 다 보내고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중상을 입고 잡히고 만다. 장윤덕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앞니로 혀를 깨물어 말문을 닫는다. 조선의 운명도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1907년 9월 16일 상주군 함창면 구향리 농암 가는 뒷산 언덕길에서 마침내 총살당하니 겨우 3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