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의 대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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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청주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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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한씨(淸州韓氏) : (1568 1592 추정) 죽음으로 지킨 정절

 

한씨 본관은 청주이다.

고려 개국공신 태위 한난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한행韓荇이다.

죽은 정씨 처녀는 본관이 동래이니 고려 좌복야 정목鄭穆16세 손녀이고 아버지는 정식鄭湜이다. 오라비 정영후鄭榮後는 곧 한씨 남편이다.

 

쌍절암은 임진왜란을 맞아 우망리 마을로 쳐들어온 왜군들을 피해 두 여인이 목숨을 초개처럼 던진 곳이다.

풍양면 우망리 쌍절비는 유인 한씨와 그 시누이 정씨 처녀가 함께 절명한 사실을 기록한 비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정씨 19세매오공(: 영후)의 부인 청주 한씨와 매오공의 동생인 처녀 시누이가 왜적의 분탕질에 대동산 골짜기까지 몸을 피했으나 아녀자의 몸으로 더이상 저항할 수 없자 낙동강으로 몸을 던져 절개를 지켰다. 그 후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임금이 교지를 내려 종택 문밖에다 정려를 짓게하고 대사성 우복 정경세로 하여금 그 행적을 비문으로 지어 쌍절각을 세우게 하였다.

대사성 정경세가 지은 쌍절비에는 갑자기 사지에 다다르면 당황하여 그 절의를 온전히 지킬 이가 드물고 죽음을 모면하려고 애쓰기 쉽고 의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이가 천만인 중에 한 사람이 있기도 오히려 어려운데 두 부인이 능히 이 일을 이루었으니 청명한 기상과 티 없이 아름다운 자질과 굳은 정절의 큰덕을 지니지 않았다면 어찌 능히 이렇게 할 수 있었으랴. 장하도다. 그 정절의 빛남이여!’라며 두 여인의 기개를 높이 찬양해 적고 있다.

대나무처럼 곧게 사는 정절貞節이란 남성들이 강요해서 걷는 길이 아닌, 남성의 소유물로서 여성 몸을 지키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닌 그들이 선택한 마지막 길이었다.

한씨와 정씨 처녀는 부끄러움 없이 사는 길이 인간의 주요 본성임을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