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의 대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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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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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권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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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욱(權旭) : (1550 - 1612)

 

용문 제곡(맛질) 출생으로 안동 권씨 후예다.

정유재란 때 친정소수)가 되어 선무공신에 녹훈된다. 맛질은 권욱 의 할아버지 권의權檥가 살았던 마을이다. 권의는 호가 야옹野翁이며 어머니 생가인 안동군 북후면 도촌리에서 태어났다. 권의의 아버지는 권사빈士彬이다. 권의는 1507년 진사가 되었으나 더 이상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1540년 장수찰방을 거쳐 1545년 의흥현감을 그만두고 안동 도계촌에서 예천 작은 맛질로 옮겨왔다. 이때 스승인 조광조의 향약법을 고을에 시행하여 향약의 임원인 약정約正으로 추대되었다. 그 뒤 후손 10여명이 대소과에 급제하여 예천 명가로 자리 잡게 된다.

권욱의 자는 경초景初. 호는 매당梅堂 시호는 충정공이다. 1550년 태어나 1590(선조23) 서경덕 등과 함께 진사시에 합격한다.

권욱이 김성일金誠一의 문인으로 사마시에 합격했을 때는 나라에 전란의 기운이 먹장구름처럼 몰려오는 때였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수 많은 침략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민중이 주축이 된 의병들이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함으로써 연면히 역사를 이어왔다.

왜놈들이 쳐들어오자 사족이나 백성들은 산으로 골짜기로 피하기 바빴으니 의병을 조직할 시간도 물자도 없었다. 그러나 그 긴박한 순간에도 뜨거운 가슴들이 모였으니! 15926월 초 전 현감 이축李軸, 진사 이광옥李光玉, 권욱이 깃발을 들고 의병을 일으켰다. 권욱과 의병장들은 마을마다 장정을 모으고, 척후병을 띄우고, 왜적을 물리칠 전략을 짜고 물자를 모으며 강력한 저항을 하자 왜적들은 예천 쪽으로 얼씬도 못하게 되었다.

권욱은 1608년 어머니가 돌아가자 슬퍼하다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1612년 타계한다. 권욱을 기리는 제곡동 향사는 함취정咸聚亭에서 지낸다. 이 정자는 권욱을 추모해 지은 것으로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