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의 대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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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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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탁

예천문화원이메일

 

  정 탁鄭琢 : (1526 1605), 이순신을 구하고, 조선을 구한 의로운 충신.

      

정탁의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도산급문제현록에는 안동에 살다가 예천으로 옮겨 살았다고 나온다.

그러나 처음부터 외가인 예천 용문면 하금곡 버들밭에서 태어나 자랐고 9살 때 어머니 상을 당한 뒤 아버지를 따라 잠깐 안동 가악촌에서 살았으나 20살 뒤에는 다시 아버지를 따라 용문면 금당실에 머물렀다.

23살에 예천읍 고평동에 살던 관물당觀物堂 반충潘冲의 딸과 혼인 하였고 30대에 벼슬을 시작하여 줄곧 서울에 머물다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처가인 고평동에 내려와 살았다. 부모 산소나 그와 관련된 모든 유적이 예천에 있다는 건 예천 사람이란 뜻이다.

 

155227살 때 생원시, 155933살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34살에 교서관정자26), 40살에 성균관전적, 49세에 이조정랑, 51세에 도승지, 56세에 대사헌, 63세에 이조판서 그리고 70세에 우의정을 지낸다.

 

그는 꺼져가는 조선을 구한 사람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큰칼 차고 있을 때 자신에게 닥칠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조에게 신구차(伸救箚)를 올려 주청한다.

 

정탁이 자신의 안위를 가리지 않고 주청해서 이순신이나 김덕령을 구해냈거나 구하려고 애쓴 부분에서

그의 우국충정이 느껴진다.